본문 바로가기
러시아

세게 국토 면적 1위 러시아 알아보기 - 상트페테르부르크

by Yeooooniii_ 2020. 9. 27.
반응형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창문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 기본정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전에 러시아의 수도였던만큼 러시아 연방 주요 도시로 레닌그라드 지역과 북서부 연방의 행정중심지 입니다. 현재 수도인 모스크바만큼 큰 도시로 러시아의 북서지역, 핀란드만 해안, 네바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의 고향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 다음으로 러시아의 주요 경제, 과학, 관광,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구는 2018년 기준 5,351,935명이며 면적은 1,439㎢에 이릅니다. 모스크바에서 고속열차 삽산으로 약 4시간 소요되는 이곳은 모스크바와 동일한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습지대로 사람이 거의 살지 못하는 버려진 땅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최초의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네바 강 하구 근처인 자야치 섬의 늡지에 페트로파블롭스크(피터 앤 폴 요새)를 세운 날이기도 합니다. 설립의 주 요점은 러시아 제국에서 서유럽과 전 세게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물길을 뚫는 데에 있었고 요새 맞은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상업적 항구가 세워졌습니다. 러시아는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한 도시가 러시아 내륙지방에 위치해있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항구가 필요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을 걸쳐있지만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유럽으로 가는 창문'으로써 아시아보다는 유럽으로 소속되고 싶어 했고 유럽인들처럼 생활하고 싶어했습니다.

 

1712년 표트르대제 1세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의 수도 이전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1713년 법원이 지어지고 표트르대제 1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냄으로 수도로써의 의미를 가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습지였기 때문에 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습지를 돌로 매우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이때 약 2만에서 4만여 명의 수많은 노예들이 이용당하고 또 희생당했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수많은 살마들이 작업 중 사망하게 됩니다. 많은 시체들을 그냥 습지로 던져서 매입하는 방식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명예롭지 않은 수식어가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도시를 건설한 이후 러시아 각 도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켰습니다. 1725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구는 약 4만여 명에 이르렀고 현재는 러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1720년대 후반 표트르대제 1세의 장남 알렉세이의 아들인 표트르2세 통치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원이 다시 모스크바로 이전해고 재위 3년 만인 1730년 14살의 어린 나이에 천연두로 사망하게 됩니다. 표트르 2세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때 새로운 여왕 안나 이바노브나가 통치하게 되는데 그녀는 나라 통치에 큰 관심이 없었고 유학을 즐기며 화려한 삶을 보냈습니다. 당시 안나의 통치기간을 러시아에서는 어두운 시기(dark era)라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후 러시아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 중 한명이자 가장 오랫동안 지배한 여성지도자, 러시아의 마지막 여제 예카테리아대제(캐서린대제)가 통치하게 됩니다. 이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구는 약 16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도시와 교외지역에 많은 궁궝들을 지었고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예카테리나대제는 유럽 각지의 그림, 조각품 등의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씁니다. 이 당시 수집한 미술품들을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별궁에 보관했는데 이곳이 현재 한 작품당 1분씩 감상해도 약 10 여 년이 걸린다고 알려진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인 에르미타주박물관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18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기기 전까지 약 200여년동안 수도로써의 역할을 했습니다. 1924년 레닌이 죽은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 이름이 레닌그라드로 바뀌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가까웠던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는 도시를 지키기 위해 약 900일 동안 도시를 봉쇄했고 이 당시 인구도 많이 감소하고 건물 등의 도시기반시설이 많이 파괴되고 손상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당시 도시를 빠져나간 마지막 열차가 있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열차에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전시품을 싣어보내는것에 동참했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왔을때 단 한점의 작품만이 분실되었다는 감동적인 일화가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화들으 ㄹ보면 국민들이 얼마나 예술 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또 왜 이만큼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전쟁 이후 도시는 빠르게 재건되었고 비공식적으로 구소련 북부의 수도 또는 문화적 수도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레닌그라드에서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명칭이 바뀌게 된 것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입니다. 러시아 제국 시절의 수도였던 이곳은 현재 인구가 5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여전히 러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