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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러시아 모스크바 관광명소 6 - 스탈린 7자매

by Yeooooniii_ 202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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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스탈린 7자매 여행 가이드

스탈린 건축양식

사회주의, 고전주의 또는 스탈린 제국주의 양식으로 불리기도 하는 스탈린 건축양식은 스탈린 통치 기간 동안 소비에트 연방의 건물을 지을 때 사용된 건축양식입니다. 스탈린 양식의 건축물은 특히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에 집주오디어 있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 운동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은 1922년부터 1955년까지 스탈린의 통치기간 동안 지속되었으며 스탈린은 이 시기에 자신의 취향을 소련에 강하게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강한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자 고층 빌딩을 짓는 프로젝트를 계획 및 실행했고 스탈린이 통치하던 시절은 소련의 강한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성공하는 결정적인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요제프 스탈린은 193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가 되었고 그의 목표는 소련을 산업화된 공산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모든 요소가 국가의 통제 하에 있는 억압에 의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건축가들 또한 국가의 큰 규제를 받고 있었으며 스탈린은 죄수들을 노동자로 사용한 건설 프로그램을 고안했으며 건축가들이 죄수들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건축가들은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명목으로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으며 당시 소련사회의 엘리트 계층으로 여겨졌습니다.

 

스탈린은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소련의 힘을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어 했고 그의 주된 목표는 소련의 성장과 번영을 외국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스탈린만의 선전적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건물을 지었습니다. 이 건축물들은 소련을 세계 최고 강대국으로 끌러올리는데 중요한 이미지 요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스탈린 양식의 건축물은 모스크바에 7개가 있는데 건축물의 모양이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스탈린 7자매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건물 꼭대기에 붉은 별을 설치해서 스탈린 7자매 건물만의 독특한 상징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한 가장 높은 건물의 정점에 중앙 첨탑이 있는데 초반 건축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건설 이후에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스탈린은 미국의 초고층 건물의 스카이라인을 보고 그들보다 더 멋있는 소련만의 초고층건물을 디자인하고 싶었고 특별하게 구별하고 싶어했습니다. 이러한 스탈린의 개인적 취향과 선호도가 초고층건물의 중앙 첨탑으로 설계되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설계과정에 있어서 도시계획 또한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군사 퍼레이드와 의례적인 행사를 위해 큰길과 직선도로를 중심으로 건설되었고 이 새로운 계획에 의해 도시의 많은 곳이 철거 및 재건되었습니다. 이는 스탈린 통치 아래 정부의 사상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건물은 대부분 고층건물이며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건축가의 특징은 거의 상관없으며 스탈린 시대에 건설된 모든 건물은 일관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정부의 엄청난 간섭 아래에 도시가 계획되고 건물이 건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거용 건물은 사회 계층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습니다. 정부의 고위 지도층과 엘리트 계층을 위한 건물은 호화롭게 지어졌고 반면 일반 서민들의 위한 건축물은 단순하고 기본적인 주거욕구만 해결할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스탈린 양식의 건축물은 기능성보다는 외형의 미적 감각에 중요성이 치중되어있고 이것은 과거의 소련 시절에 이어서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의 랜드마크로 손꼽히는 스탈린 7자매 건물에 잘 드러납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소련 건축의 랜드마크가 된 7개의 ㅓ대한 고층 빌딩이 건설되면서 스탈린 양식의 건축물이 정점을 찍습니다.

 

스탈린 7자매의 역사

모스크바의 스카이라인은 스탈린 7자매라는 별명을 가진 7개의 우뚝 솟은 고층빌딩에 의해 정의됩니다. 몇몇 사람들은 건물 자체가 스탈린 통치 당시의 탄압을 암울하게 상기시키고 어마어마한 규모에 불길해 보이는 첨탑을 가지고 있는 사실 때문에 랜드마크로써의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의 여지 사이에도 소련 시대와 근대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스탈린은 2차세계대전 이후 도시를 재건하는데 다른 도시들과 경쟁했습니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 다른 유럽, 서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초고층빌딩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탈린의 계획은 미국과 유럽에서 완공된 초고층빌딩에 견줄만한 총 8개의 초고층 빌딩을 모스크바에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건축가들은 건물을 건축하는데 구소련의 건축연합(All-Union Academy of Architecture of the USSR)의 통제를 받았씁니다. 스탈린의 개인적 취향의 상당 부분은 1933년(소비에트 궁전이 설계되었던 해) - 1955년 사이의 시기이며 현재 스탈린건축양식이라고 불립니다. 스탈린양식은 러시아의 바로크양식과 고딕양식의 결합을 위해 현대성은 포기되었다고 보고있습니다. 이 스타일은 스탈린 7자매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하는 '웨딩케이크'모양의 디자인과 정점의 중앙 첨탑입니다. 본래 계획에는 첨탑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당시 미국의 고층건물들과 구분하기 위해 스탈린의 요처에 의해 설치가 되었고 그 후 모든 7자매 건물에 첨탑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일곱자매 중 마지막 건물은 스탈린이 죽고 4년 뒤인 1957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곧이어 스탈린 양식을 지향하던 건축 연합이 폐지되며 스탈린 양식의 건축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애초 스탈린은 모스크바 800주년을 기념해 총 8개의 건물을 계획했습니다. 여덟번째 건물로 예정되었던 자랴지예 행정건물은 붉은광장 근처 역사적인 자라지예지역에 지어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을 짓기 위해 해당 지역을 철거한 후 계획이 무산되었습니다. 자원 부족으로 모스크바 강둑의 견고하지 못한 지반 위에 32층짜리 대규모 건물을 짓는 것이 곤란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 자리에는 비교적 현대적인 러시아호텔이 지어졌지만 현재는 철거되었고 거대한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스탈린 7자매 건물 알아보기

스탈린 7자매 (1) - 붉은 문 광장 행정부 건물

착공 - 완공 : 1949년 - 1953년

높이 : 133m

목적 : 주거 및 상업용, 무역부 사무실

 

스탈린 7자매 중 가장 작은 건물로 높이 133m, 24층 규모의 건물입니다. 러시아의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지하철역으로 손꼽히는 Mayakovskaya 그리고 Kropotkinskaya 역을 설계한 Alexei Dushkin이 설계한 이 건물은 1953년에 완공되었고 행정부 건물 그리고 주거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붉은 문 광장 행정부 건물을 보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건물 아래에 얼어있던 토양을 보강하기 위해서 골격을 한쪽으로 기울인 채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스탈린 7자매 (2) - 코쪨니체스키 강변 아파트

착공 - 완공 : 1938년 - 1940년

높이 : 176m

목적 : 주거 및 상업용

 

모스크바강이 모스크바강의 왼쪽 지류인 야우자강과 만나는 곳에 코쪨니체스키 강변 아파트가 위치해 있습니다. Dmitri Chechvlin과 Andrei Rostkovsky에 의해서 설계된 이 건물은 높이 176m의 32층 규모입니다. 이 중 26개 층은 아파트 주거용, 나머지는 사무실과 공공시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본관은 사회 엘리트 계층의 주거용으로 계획된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대규모 아파트, 다세대주택 등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건물은 기상 관측용 장비가 구비되어 있어 기상연구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스탈린 7자매 (3) - 러시아 외무성

착공 - 완공 : 1948년 - 1953년

높이 : 172m

목적 : 관공서

 

구 아르바트 끝에 서있는 외무부 건물입니다. 겔프리히와 민크스의 설계 초안은 9층부터 40층까지 다양했지만 결론적으로 27층의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1953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현재 외무부를 포함한 다른 정부 기관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의 정점의 첨탑이 건물의 다른 부분과 색이 다른점이 특이한테 기존 설계시에 건물에는 첨탑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후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추가되었기 때문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스탈린 사망 이후 민크스는 첨탑이 본인이 기존에 설계했던 부분이 아니며 건물과도 부조화스러우니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러시아 정치인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전했지만 스탈린의 어리석음에 대한 기념비로 보관하라는 답변으로 요청을 거절당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스탈린 7자매 (4) -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착공 - 완공 : 1949년 - 1953년

높이 : 240m

목적 : 교육기관

 

240m 높이의 36층짜리 모스크바국립대학교는 스탈린 7자매 건물 중 가장 크고 높습니다. 3만여 명의 학생으 ㄹ수용할 수 있는 이 건물은 완공 후 1990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습니다. 소련 왕궁의 건축가인 보리스 이오판은 스탈린 7자매 중 사람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할만한 건물을 설계하도록 의뢰받았습니다. 그는 참새언덕의 가장자리에 건설을 계획했고 이는 산사태의 위험을 전혀 고려하지 못해 이후 기존의 위치에서 800m 가량 떨어진 곳에 건설을 결정한 레프 루드네프로 건축가로 대체되었습니다. 1949년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지하 수면에 가까이 위치하여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펌프와 파이프를 설치해 건물의 기초공사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물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펌프들은 건물을 바로 세우기 위해 오늘날에도 계속 작동하고 있습니다. 스탈린 7자매 중 두번째로 완공된 모스크바국립대학교 건물은 현재 강의실, 기숙사, 행정사무실, 상점, 카페테리아, 박물관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스탈린 7자매 (5) - 쿠드린스카야 광장 아파트

착공 - 완공 : 1948년 - 1954년

높이 : 160m

목적 : 주거 및 상업용

 

Mikhail Posokin 그리고 Ashot Mndoyants에 의해 설계된 쿠드린스카야 광장 아파트는 소련의 문화 지도자들으 루이한 주거지로 이요도리 예쩡으로 매우 우아하게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높이 160m 의 지상 22층 규모의 이 건물은 방치됩니다. 오늘날 건물은 보수되어 옛날의 우아했던 건물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며 상가에는 가게들과 식당들이 운여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사관 근처에 위치한 쿠드린스카야 광장 아파트는 미국 대사관 공사시에 최고층 두개층의 주민들은 강제로 쫒겨나고 미국 대사관 활동을 엿듣기 위한 KGB의 감시장비를 보관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스탈린 7자매 (6) - 힐튼 모스크바 (구 레닌그라드 호텔)

착공 - 완공 : 1949년 - 1952년

높이 : 136m

목적 : 호텔, 컨퍼런스 센터

 

136m의 지상 26층짜리 건물은 Leonid Polyakov에 의해 디자인되었고 유럽 최고의 호텔로 설계하였습니다. 그는 이 건물을 설계함으로 스탈린상을 수상했으나 7년 뒤 흐로쇼프가 1955년 디자인 계획 및 건축의 초과 청산에 관한 법령에서 일반 호텔 객실 1,000개를 만드는 비용으로 레닌그라드 호텔의 단 354개의 객실만을 건설하였다고 건축물의 가격대비 효율성에 대한 내용을 지적하면서 스탈린상을 빼앗겨 잃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비용이 소비된 것을 호텔의 화려한 실내장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한때 건물의 7층 로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가 걸려있는 것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레닌그라드 호텔은 소련 붕괴 이후 힐틀호텔이 매입하게 되고 2008년 273개의 객실로 리뉴얼되어 현재 운영되고 있습니다.

 

스탈린 7자매 (7) - 래디슨로열호텔 (구 우크라이나 호텔)

착공 - 완공 : 1953년 - 1957년

높이 : 206m

목적 : 호텔, 컨퍼런스 센터

 

스탈린 8자매 중 두번째로 큰 래디슨로열호텔 건물은 높이 206m의 지상 34층 건물로 Arkadi Mordvinow와 Vyacheslay oltarzhevsky에 의해 디자인되었습니다. 1967년 5월 25일에 완공된 이 건물은 1,63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럽 최대규모의 호텔이었습니다. 2004년 호텔 꼭대기 층에 전망대가 오픈되었으며 화재 발생 시 투숙객들이 안전하게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느 ㄴ매우 독특한 화재안전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고 합니다. 소련이 붕괴된 후 우크라이나 호텔을 래디슨호텔에서 매입하여 2007년 보수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10년 보수공사를 마친 호텔은 래디슨로열호텔로 재개장하였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호텔로 불리지만 래디슨호텔의 꾸준한 마케팅을 통해 래디슨로열호텔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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